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이브러햄 링컨 (문단 편집) === 링컨과 아내, 그리고 우울증 === 젊은 시절에 에이미 스튜어트(1812 ~ 1836)라는 여성을 사랑하여 청혼까지 했는데, 그녀도 링컨을 좋아하여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로부터 몇달 안 가 그녀가 갑작스럽게 [[장티푸스]]로 별세한 슬픔에 빠져 한동안 여성을 사귀지 않았다가 1842년에 메리 토드라는 남부 출신의 부잣집 여성을 소개받아 결혼하게 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메리 토드의 전 남친은 더글러스였다고 한다. 헌데 불행히도 메리 토드 링컨(Mary Toad Lincoln, 1818 ~ 1882)은 '''악처'''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실제 성격이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메리 링컨은 [[히스테리]]와 [[편집증]] 증세가 있었고, 이는 남편과 후술된 아이, 형제자매들의 사망 이후엔 거의 정신병 수준으로 심해진다.[* 오죽하면 장남 로버트 링컨이 비밀리에 [[정신병원]]에 구금할 정도였다. 하지만 어찌어찌 탈출해서 아들을 까버렸다고 한다.] 다만 악처설은 [[정적]]들이 남부 출신으로 노예주의 딸이었던 메리 링컨을 잠재적 반역자로 간주한 내전 시기의 견해가 증폭된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실제 부부간 사이는 생각보단 큰 갈등 없이 유지되었다고 한다. 물론 [[공처가]]였던 링컨이 부인의 성화를 참고 살았다는 게 중론이긴 하지만. 하지만, 메리 토드 링컨이 실제 처신을 잘못한 부분도 분명 있긴 한데, 예를 들어 메리 링컨의 여동생은 남군 육군 [[준장]]의 아내였는데, 메리는 제부가 남북전쟁 당시 서부전선에서 전사하자 그 전투가 연방군의 승리였음에도 공식석상에서 눈물을 보이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남부에 살던 동생을 백악관으로 불러서 며칠 묵고 가게 하기까지 하는 등, 전시에는 그다지 적절치 않아 보이는 행동을 하기도 했다. 이런 행적 덕에 남편과는 달리 메리 토드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영부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반대로 미 역사상 최고의 영부인으로 [[FDR]]의 부인이었던 [[엘리너 루스벨트]] 등이 거론되는 편이다. 근데 여긴 반대로 남편이 외도를 해서 아내가 맘고생을 좀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